때는 386(*주:intel80386 프로세서를 달고 있는 퍼스널컴퓨터를 칭함. 386세대 아님-_-) 컴퓨터가 횡행하던 시절을 지나, 486PC를 거쳐 그 이름도 찬란한 586펜티엄이라는 녀석이 대세인 꿈과 낭만이 가득한 시대였다. 나 역시 국민초등학교 시절에 만진 역시 그 이름도 찬란한 대x컴퓨터의 IQ2000(하핫;;)을 필두로 <8086, 80286 은 패스하고>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386sx를, <역시 80486은 패스하고> 그리고 조금 세월이 지나 궁극의 intel Pentium® 프로세서를 탑재한 PC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컴퓨터 쫌 했다고 얘기하고 있는 중 -


시대는 ketel 등의 PC통신을 거쳐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밀려 오는 전화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던 중 오버클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격대 성능의 극대화라는 마력에 사로잡혔다. 누구는 오버클럭을 하다가 CPU를 태워먹었네 어땠네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몇날을 두고 고민하던 나는 기어코 그 일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주:오버클럭-CPU 클럭 뻥튀기하는 기술)


전날 깨끗하게 목욕재개 하려던 계획은 어찌되었든 물거품이 됐지만 착실하게 자료를 수집해서 해야할 순서를 차근차근 밟았다...라고 하지만 메인보드가 훌륭한 녀석이어서 점퍼셋팅으로 쉽게 오버할 수 있었다.(불멸의 ASUS -_-b) 먼저 150Mhz를 166으로 올려보았다. 부팅시에 뜨는 166Mhz라는 메시지를 본 순간 그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사용해보고는 다시 180Mhz에 도전해서 그것마저 성공했다. 오오- 빨라진 것 같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다. 200Mhz. 궁극의 클럭을 놓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쿨링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이것을 실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와처럼 CPU에 계란후라이 해 먹을 것도 아닌데, 혹시 타 버리면 아부지가 허리를 뒤로 접어버리지 않을까. 아냐, 컴퓨터가 갑자기 미치더니 죽어버렸다고 하면 될 것이다...등등 수많은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자.


결국 나는 결단을 내리고 점퍼를 200Mhz에 맞췄다. 부팅스위치에 손가락을 얹고 잠시 기도를 드린 다음 힘차게 그것을 눌렀다.


'삑-. 우웅~'


내장스피커의 비프음과 힘차게 돌아가는 파워의 쿨러소리. 그리고 기적적으로 내 눈에 들어온 200Mhz 라는 저 웅장한 표시! 아, 장하구나 내 펜티엄이여. 그대는 이로써 더이상 하층민이 아니라네. 감격의 순간이었다. 150Mhz 를 갖고 200Mhz라니, 그것도 아무 쿨링시스템도 없이 하드코어한 오버클럭을 버텨 준 내 컴퓨터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잠시 후. Windows 95로 진입하던 그 녀석은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씨껍한 얘기를 내뱉고서 뻗어버렸다. 잠시 낙담하던 나는 그래도 180이면 어디냐는 생각으로 그만해도 대견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순간.


어디에선가 매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아뿔싸! 눈앞이 노래졌다. ㅆㅂ돋됐다.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잠시 멍해있던 나는 후다닥 전원스위치를 눌러서 컴퓨터를 끄고, 잔뜩 땀이 밴 손을 바지에 닦아가며 컴퓨터를 살피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컴퓨터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제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슬퍼졌다. 나는 프로세서에 코를 박고 냄새도 맡아보고 보드의 어디가 터졌나 콘덴서도 살펴보고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타버린 흔적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매쾌한 탄내는 내 코를 자극하는데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그때 들리는 다급한 발자국소리.


'쿵쿵쿵쿵....'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아이고, 이런 다 타버렸네. 내 정신 좀 봐."


방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보니 온 집안에 연기가 차고 부엌에서 투덜대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릿물을 올려놓고 낮잠을 주무시다가 완전히 다 타버려서 주전자를 버려야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아.....-_-;


어쨌든 살았긴 하지만 정말이지 끔찍한 순간이었다. 제발 집안에서 그런 것 좀 태우지 말라고 쓸데없는 항변을 어머니께 한마디하고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생긴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거다. 곧바로 클럭을 원래대로 맞추고 잠시 컴퓨터를 식힌 다음에 작동시켜보았더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오버클럭의 최초시도에서 한 번 데이고 난 후에는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후에 다시 180Mhz로 올려서 3년여를 쓰고 그 녀석은 역사속에 잠들었다. 요즘에 와서는 프로세서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다소간의 오버클럭은 그야말로 별 티도 안나고 체감성능에 큰 차이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순전히 재미로라도 그런 짓을 아직도 하고 있으니 인간의 탐구심과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이 글은 교훈적인 글이라는 맺음 -


#

오래전, 네이흥~에서 오버클럭에 관한 에피소드로 글짓기 대회-_-가 있었는데, 그때 1등 먹었던 글입니다. 상품은 GRA.VE 스피커였는데...소리 참 좋았지요;ㅁ;

Posted by 좀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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