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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히 면접장에서 장난질(?)은 못했지만.
이력서 쓸 때.
특기 : 음주가무
라고 쓴 적이 있다.

첫번째 직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험볼 때도 종종 장난질 치고 한 기억이 있다.
중학교 3학년 국사시험이었는데, 문제가 "다산 정약용의 어쩌구 저쩌구~블라블라~ 책 이름은?" 이었을 거다.

다들 꽤 어려운 문제였나 보다. 친구 중 한 녀석이 손을 불쑥 들더니,
"선생님 힌트 좀 주세요. 어려워요~!"

라고 하니까, 참으로 어여쁘시고 한 성격 하시던 울 담임쌤.
"네글자"
라고 답하시더라.

그러니까 그 녀석 또 다시.
"힌트 한번만 더 주세요~"

라고 또 앵기는거다.
그러자 선생님.
"한문"

곧바로 주변에서 "우우~"라는 야유가 터져나왔고,
선생님께서 한번만 더 주디를 놀릴시에는 답안지 박박 찢고 운동장 열바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북두신권" 이라고 쓰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뒈질뻔했다.

Posted by 좀모씨

이 이야기는 진정한 저의 흑역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혼자서 밥먹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밥은 여럿이 도란도란 먹는게 맛있기는 하지요. 저는 혼자서 밥먹기를 많이 해봐서 그런지 그다지 꺼리지는 않습니다만...즐기는 편도 아닙니다. 혼자 밥을 먹게 되면 먹는다기 보다는 쓸어담는다고 하는 편이...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고깃집에서만큼은 혼자 먹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혹시 보신 적 있습니까? 저는 아주 오래전에 딱 한 번 봤습니다. 혼자서 삼겹살 상추에 싸서 쌔주 드시던 아저씨.....뭐랄까 참....없어보이는 광경이죠 ㅠ_ㅠ

이틀 전 저녁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운동을 마치고 룰루랄라 마이 스위트 홈으로 컴백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 일 조금 있으면 끝나니까 다른 존재의 살을 섭취하여 단백질 보양을 해주심이 어떻겠는가 하는 거였지요. 강호동이 티비에 나와서 아침 삼겹살 이야기를 하기 15년전부터 아침댓바람에 삼겹살 및 목살, 갈비, 주물럭 등등을 섭취해 온 경력이 있는 저. 고기 먹자는데 절대 마다할 리가 없습니다.

그때가 7시 5분경. 금방 끝난다니 대략 20~30분 있으면 오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고깃집 앞에 차를 대고 다른 친구놈에게 또 전화를 했습니다.

꼬기먹자아~~~~, 오키 콜~~, 언제 오냐?, 어 금방 가께, 오키~

그 고깃집이 소갈비살이 정말로 정말로 죽도록 맛있는 집입니다. 전국 어디에서 먹어봐도 그집보다 맛있는데를 아직 못찾았습니다. 대신 가격이 촘 쎄죠 -ㅁ-;

어쨌든...가게 앞에 가만히 앉아있을라니까...이거참 안되겠더군요. 배도 슬슬 고파오고...갈빗살 한점에 쌔주 한잔이 그냥 막...막.... ㅠ_ㅠ 어차피 애들 20여분 있으면 올 것 같으니까, 그냥 들어갔습니다. 이집 인기가 좋아서 늦으면 자리 없으니까 자리 맡아둔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면서...

들어가보니 두테이블에 손님들이 있더군요. 가게가 꽤 작고 요즘은 보기 힘든 동그란 시멘트 테이블에 연탄을 넣고 고기를 굽는데거든요.

들어가면서 세명이요~ 쩜있음 올거에요. 그러고 갈빗살 2인분과 쌔주 한병을 시켜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하아....적당히 구워져서 탄력이 오른 갈빗살을 한입 물고 씹을 수록 베어 나오는 감칠맛 나는 고소한 육즙....하아~~~~ 그리고 쌔주 한잔~

이넘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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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좋아하는 쌔주 그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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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등장으로 인해...요즘 참 갈등입니다.
아직 시식은 못해봤네요 ㅠㅠ
.
.
.

이건뭐 그냥 천국이죠. 배도 고팠겠다. 계속 고기를 구워서 먹으면서 쌔주도 홀짝홀짝 마셨습니다. 그러고 30분정도가 지났지요. 어느덧 손님들이 삼삼오오 계속 들어와서...테이블이 꽉 찼습니다. 네...꽉 찼습니다. 빈자리 하나 없이...- _-;

그리고 저는 쌔주 한병을 다 마시고 한병을 더 시켰습니다.

거기 아주머니께서 쌔주를 갖다 주시면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일행 분들이 늦으시네요.
...네, 그러게요- _-; 아~ 고기 맛있어요~ 최고최고.
...네~ 그거 혼자서 맘껏 다~ 드세요~ ^^


왠지...안쓰러워 보였나봅니다- _-; 서비스 줄 것도 아니면서 그거 다 먹으란 얘기는 왜 하시는거임? 어차피 다 먹을거란 말입니다.

계속 멀뚱하게 텔레비젼을 보면서 혼자 고기를 씹으면서 쌔주를 마시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그러다가 만나기로 한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도 업체 사람들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잠깐 인사하고 계속 먹었습니다. 그 친구가 얼마 후에 제 테이블로 와서 쌔주 한잔 마시고 갔습니다.

고기가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그리고 2병째 쌔주도 한두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첫잔을 따르고 난 1시간 뒤, 그제서야 친구놈이 왔습니다. 오다가 갑자기 집에 뭐 도와줄 일이 생겨서 잠깐 다녀왔다고 그러면서 웃네요.

저넘을 연탄위에 올려놓고 구워버릴까...ㅡㅡ;


잠시 생각했지만, 고기와 술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게 다 용서되는겁니다. 으하하하~~

그리고 10여분 후에 다른 친구까지 다 왔습니다.

고기 3인분을 더 시켜서 신나게 먹고 마셨습니다.
암만요. 고기와 술이 있는데, 사람 가득한 식당에서 혼자 먹는 게 뭐 대수입니까~

그리고 집에 와서 장렬히 전사하고, 어제 오전에 회사 땡땡이친........- _-;;

나 좀 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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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모씨

[출처 ]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713785



사실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직접 말씀드리고싶었는데,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 덕에 서버가 다운됬더군요.

우선 감사드릴게요.

아수라장이 된 서울에서 시위대의 안전을 위해 무려 특공대까지 보내주셨더라구요.(이런 어폐가 또 어디있겠나 싶지만.)
그네들이 한 일이 비록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일단 취지는 '참 잘했어요'라 할만하군요. 진심이셨다면 말이에요.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있잖아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아아, 돈 버시느라 한참 정신이 없으셨을 때라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 아니 세 달 전까지의 민주정치는요

우리 아빠가 (안 그래도 윤년이라) 4년에 한번밖에 못얻어먹던
그 생일 미역국을 먹다가 '똑똑똑 여깄는 거 다 아니까 나와!' 해서 끌려간
취조실에서,
옆방에서는 친구가 죽어가던 그 취조실에서
온갖 고문과 심문을 견뎌내며 이뤄낸 민주화거든요.

저는 아빠한테 그 얘기 들으면서 울었거든요.

잡혀갈 거 뻔히 알면서,
엄마가 (그러니까 우리 할머니요.)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려고
들어간 집에서,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우리 아빤 그 때 스물 갓 넘은 대학생이었잖아요?

그렇게 이뤄낸 민주화랬어요.

그러니 지금 청계 광장이며 시청앞 광장이며 하는 '아고라'들에서
용감한 척, 센 척 당신에게 맞서 싸우는 제 친구들과, 동생들과, 언니들과,
오빠들과, 그리고 이미 5공화국을 겪은 아저씨 아줌마들은,
얼마나 무섭겠어요.

정말, 물대포가, 그 방패가, 그 특공복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겠어요.

근데 감히 당신은,
경제 살리라고 뽑아줬더니(솔직히 저는 그 말을 믿지도 않았지만요.),
민주는 커녕
처음부터 작은 정부를 표방한 큰 정부로
온갖 민생을 위한 부서들을 통폐합 하셨죠. 그것들의 참된 의미도 모르면서요.
공공연한 비리를 위해 기업 핫라인을 개설하셨죠.

마음대로 하고싶은 공부도 하지 못하게 학교까지 자율화해 주셨어요.
저는 그렇게 하고싶은 디자인 공부를, 눈치보면서 해야 해요.
앞으로 감당해야 할 학비가 너무 무섭거든요.

레임덕이라는 말도 아깝게 이른 레임덕을 맞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위해
쇠고기 시장도 내 놓으셨죠.
정례 브리핑도 없애셨잖아요.
걸핏하면 엠바고라고 들었어요.
국민의 알권리는 이쯤이면 충분히 무시하셨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대통령 아저씨.
국민들은 말이에요, 심지어 91년생에 모의고사를 보름 앞두고 있는 저도요,
사실 알 건 다 알아요. 이건 당신만 모르는 비밀인데요,
요즘 한겨레 판매 부수가 늘고 있거든요.
(그건 아저씨가 당선 됬을 때부터 예상된 일이긴 했죠.)

아무리 조선일보, 중알일보, 동아일보에서 북한 미사일을 떠들어도
국민들은 당신이 하는 일을 다 지켜보고 있거든요.
이 세상은 벌써 너무 '좋아'졌거든요.

이젠 인터넷  '시작화면'으로 네이버 대신 다음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아무리 많은 금칙어를 남발해도 말이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아빠가, 아빠의 친구들이, 아빠의 선배들과 후배들이
지켜낸 그 소중한 민주화 때문에라도
당신이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을 거에요.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은 자유를 맛보았잖아요.
우린 이미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통령 험담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맛보았잖아요.
그런 민중에게
복종을 강요한다면,
당신은 헌법재판소로 가실 수 밖에 없어요.

그건, 91년생인 저도 알잖아요.

아까 쫌 전에, TV에서 내각을 쇄신하겠다며 환하게 웃고 계신 당신을 보았어요.
참 환하게, 당신 이마만큼 환하게 웃고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같은 시간에, 시위대는 울고 있었어요.
그 곳에 나갈 수 없는 내가 미워서, 나도 울었어요.
(부끄럽지만, 지금도 울고 있어요.)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하면 눈은 한 번 깜빡여 주실까,
혹시 당신의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는 사실은 알고 계실까,
KBS 사장이 바뀌면 KBS는 물론 드라마, 스포츠 케이블도 안보겠다고 생각하는
여고생이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까.

저는 당신한테 관심이 많거든요.
어떻게 하면 당신이 저와 제 친구들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줄까 하고.
국민들도 당신한테 관심이 참 많거든요.
어떻게 하면 당신이 조금이라도 '성장'보다는 '분배'를 우선해주실까 하고.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좌파 운운하실거에요?
웃기지 않나요.
민주주의를 원하는데 좌파라니요. 오히려 당신들을 우파라 하기엔,
당신의 친구들은 그저 기득권 친일, 친미파일 뿐인걸요. 

얼마 전에 당신의 여동생이 우리 학교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당신을 '우리 이명박 장군님'이라 칭하며
어릴적 자식들이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해달라고 했던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져 기쁘다고 했지요.
하지만 나는, 우리는,
점심시간까지 뒤로 미루어 가며 열정적으로 간증을 한 그 분의 말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다니요,
그건 또 무슨 비약입니까.
당신의 어머님이ㅡ
울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다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저는 기독교인이에요.(개신교인지 천주교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한 신도의 입장으로, 그 분의 간증이 '주님을 영접한 경험'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사학 보호와 당신 누이동생의 간증,
그것은 신을 믿는 제가 학교 예배를 거부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뿐입니다.
어떻게 사립학교 재단 교회에서 하는 예배에 고개를 숙이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쇠고기 시장 열어도 당신한테 좋을 것 하나도 없다는 건 아저씨가 가장 잘
아시잖아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는 것, 알고 계시잖아요.
제발, 재협상이란 말도 이제 지겨워요.

참여정부가 벌인 일을 설겆이 한다느니 하지도 마세요, 제발.
선정이 펼쳐질 때에 국민들은 자기네 나라 대통령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하죠.
당신들의 언론 덕분에 묻혀버린 노 전 대통령의 노력을 욕되게 하지 마세요.
정치는 제1야당이었던 당신들이 하셨죠. 그의 '정치'를 욕하다니요.
나는 아직 어리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훌륭한 행정부였다고 확신하거든요.
하나 하나 따져보고 싶지만, 그조차도 이젠 지겹네요.

저 시위대,
5만명 안팎의 숫자로 국민 대다수를 대변하고 있는,
그 참담함을 아프게 겪고 있는 저 민중들을
한 번 진심으로 돌아봐 주세요.

있잖아요,

정말, 정말, 간곡하게 말하는 거에요.

우리 아빠가,
정말 고생고생 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심없이 얻어낸 민주화에요.

이런 식으로 짓밟지 말아주세요.
그러기엔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이 너무 슬프고 헛된 게 되잖아요.
당신이 만든 광장에서,
당신의 국민들이 울고 있어요.

어느 언론인은 그 안에서 울고 있는 헌법을 보았다고 하시더군요.

당신의 광장, 당신의 국민, 당신의 헌법이 울고 있어요.

모두가 통곡을 하고 있잖아요.

제발, 정말 제발이에요.

저는,

그만 울고싶어요. 나는 진심이에요.

2008년 6월 1일, 당신의 취임 100일과
6월 항쟁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서울에서, 수 많은 여고생 중의 한 명이 드립니다.

 

 ---

네, 물론 진위 여부는 모릅니다만.

글보고 진짜 쪽팔려 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Posted by 좀모씨

때는 386(*주:intel80386 프로세서를 달고 있는 퍼스널컴퓨터를 칭함. 386세대 아님-_-) 컴퓨터가 횡행하던 시절을 지나, 486PC를 거쳐 그 이름도 찬란한 586펜티엄이라는 녀석이 대세인 꿈과 낭만이 가득한 시대였다. 나 역시 국민초등학교 시절에 만진 역시 그 이름도 찬란한 대x컴퓨터의 IQ2000(하핫;;)을 필두로 <8086, 80286 은 패스하고>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386sx를, <역시 80486은 패스하고> 그리고 조금 세월이 지나 궁극의 intel Pentium® 프로세서를 탑재한 PC를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컴퓨터 쫌 했다고 얘기하고 있는 중 -


시대는 ketel 등의 PC통신을 거쳐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밀려 오는 전화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던 중 오버클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격대 성능의 극대화라는 마력에 사로잡혔다. 누구는 오버클럭을 하다가 CPU를 태워먹었네 어땠네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몇날을 두고 고민하던 나는 기어코 그 일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었다.(*주:오버클럭-CPU 클럭 뻥튀기하는 기술)


전날 깨끗하게 목욕재개 하려던 계획은 어찌되었든 물거품이 됐지만 착실하게 자료를 수집해서 해야할 순서를 차근차근 밟았다...라고 하지만 메인보드가 훌륭한 녀석이어서 점퍼셋팅으로 쉽게 오버할 수 있었다.(불멸의 ASUS -_-b) 먼저 150Mhz를 166으로 올려보았다. 부팅시에 뜨는 166Mhz라는 메시지를 본 순간 그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사용해보고는 다시 180Mhz에 도전해서 그것마저 성공했다. 오오- 빨라진 것 같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만하면 훌륭하지 않은가.


하지만 인간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다. 200Mhz. 궁극의 클럭을 놓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쿨링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이것을 실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와처럼 CPU에 계란후라이 해 먹을 것도 아닌데, 혹시 타 버리면 아부지가 허리를 뒤로 접어버리지 않을까. 아냐, 컴퓨터가 갑자기 미치더니 죽어버렸다고 하면 될 것이다...등등 수많은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자.


결국 나는 결단을 내리고 점퍼를 200Mhz에 맞췄다. 부팅스위치에 손가락을 얹고 잠시 기도를 드린 다음 힘차게 그것을 눌렀다.


'삑-. 우웅~'


내장스피커의 비프음과 힘차게 돌아가는 파워의 쿨러소리. 그리고 기적적으로 내 눈에 들어온 200Mhz 라는 저 웅장한 표시! 아, 장하구나 내 펜티엄이여. 그대는 이로써 더이상 하층민이 아니라네. 감격의 순간이었다. 150Mhz 를 갖고 200Mhz라니, 그것도 아무 쿨링시스템도 없이 하드코어한 오버클럭을 버텨 준 내 컴퓨터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잠시 후. Windows 95로 진입하던 그 녀석은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씨껍한 얘기를 내뱉고서 뻗어버렸다. 잠시 낙담하던 나는 그래도 180이면 어디냐는 생각으로 그만해도 대견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순간.


어디에선가 매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아뿔싸! 눈앞이 노래졌다. ㅆㅂ돋됐다.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잠시 멍해있던 나는 후다닥 전원스위치를 눌러서 컴퓨터를 끄고, 잔뜩 땀이 밴 손을 바지에 닦아가며 컴퓨터를 살피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컴퓨터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제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슬퍼졌다. 나는 프로세서에 코를 박고 냄새도 맡아보고 보드의 어디가 터졌나 콘덴서도 살펴보고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타버린 흔적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매쾌한 탄내는 내 코를 자극하는데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그때 들리는 다급한 발자국소리.


'쿵쿵쿵쿵....'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아이고, 이런 다 타버렸네. 내 정신 좀 봐."


방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보니 온 집안에 연기가 차고 부엌에서 투덜대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릿물을 올려놓고 낮잠을 주무시다가 완전히 다 타버려서 주전자를 버려야 될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아.....-_-;


어쨌든 살았긴 하지만 정말이지 끔찍한 순간이었다. 제발 집안에서 그런 것 좀 태우지 말라고 쓸데없는 항변을 어머니께 한마디하고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생긴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거다. 곧바로 클럭을 원래대로 맞추고 잠시 컴퓨터를 식힌 다음에 작동시켜보았더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오버클럭의 최초시도에서 한 번 데이고 난 후에는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후에 다시 180Mhz로 올려서 3년여를 쓰고 그 녀석은 역사속에 잠들었다. 요즘에 와서는 프로세서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다소간의 오버클럭은 그야말로 별 티도 안나고 체감성능에 큰 차이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순전히 재미로라도 그런 짓을 아직도 하고 있으니 인간의 탐구심과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이 글은 교훈적인 글이라는 맺음 -


#

오래전, 네이흥~에서 오버클럭에 관한 에피소드로 글짓기 대회-_-가 있었는데, 그때 1등 먹었던 글입니다. 상품은 GRA.VE 스피커였는데...소리 참 좋았지요;ㅁ;

Posted by 좀모씨
누구나에게 그렇듯 나에게도 첫사랑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없는 사람 메롱-ㅅ-)


- 중학교 입학 예비소집 날 -

유독 눈에 띄던 그 애. 물론 남녀공학이었습니다.

황금변색 봉투에 고이 접어넣어진 입학통지서를 꼭 쥐고, 저멀리 걸어 내려가는 그 애의 뒤통수를 감동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입학식 -

단 며칠사이 꿈속에도 들락거리던 그 애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친구들과 재잘대며 걸어가는 그 모습을 멀리까지 눈으로 쫒았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

새로운 친구들과 제법 익숙해졌을 무렵 우리는 서로 마음에 드는 여자애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머뭇거리다가 내 마음속의 그 애를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작은 관심이라고,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던 어느 일요일 -

거리에서 까맣고 노란 줄무늬가 들어간 스웨터를 보았습니다.

전날 그 애가 입었던 것과 같은 옷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낀 나는 그제서야 그애에게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오후 -

집으로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그 애의 친구에게서 온 전화였고, 곧바로 그 애와 통화를 했습니다.

남자애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자기도 관심이 있다고,

그렇게 어이없게도 쉽게 사귀게 되었습니다.


- 어느 날 오후 이발소에서 -

머리를 깍던 아저씨가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나를 혼자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갔을 때, 목에 보자기를 두른채 이발소의 전화로 그 애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척 숫기가 없었던 나는 이렇게 전화를 하는 것이 그 애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 학교에서 -

전교생이 이백명 남짓한 작은 학교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이가 된 것 같았지만, 나는 아직 티를 내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였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제대로 말 한 번 먼저 건 적도 없는 개념 없는 남자였습니다.

전화조차 집에 와서 걸지도 못하고 어둑해졌을 때 공중전화로 밖에 할 수 없는 어리숙한 남자였습니다 나는.


- 그 날 그 곳에서 -

누군가 내가 애용하던 면사무소 앞 공중전화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습니다.

한 살 많은 선배.

잠시 기다리다가 바로 옆에 있는 동네 형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나 : "저기 맹구(가명)형 전화하는데 되게 오래걸리네." -- 가명입니다.

어쩌면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형 : "아마 춘자(가명)에게 전화하겠지" -- 진짜로 가명입니다.

나 : "그런가...?"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침착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려는 그 한마디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듣고 재구성해 보니 맹구(가명)형과 춘자(가명)가 통화를 시작한 지는 벌써 두어달 된 듯합니다. 내가 그 애와 사귀기 시작하고 바로 얼마 후였더군요.


이런 날은 유난히도 별이 밝은 법입니다.

몇 번의 연결음과 예의 그, 귓가를 간지럽히는 듯한 맑은 목소리.

그리고,

나 : "....."

그 애 : "누구세요? 말씀하세요."

나 : "응, 나..."

그 애 : "아, 너구나. 왜... 말을 안해?"

머뭇거리는 듯한 목소리.(라고 느껴졌습니다.)


나 : "..."

그 애 : "여보세요?"

나 : "너...맹구형 좋아한다며?"

그 애 : "어?"

나 :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랬으면 알아서 비켜줬을텐데."

그 애 : "야...그거..."

나 : "괜찮으니까. 힘든 일 있으면 말하고, 잘 지내라. 안녕."

"딸깍."


- 그 후로 오랫동안 -

그 날의 말이 정말 잘 한 것일까, 혹시나 다시 다가오지는 않을까,

전교생 이백명 남짓한 작은 학교에서 거의 매일 마주치다시피 하는 그 애를 잊기는 참 힘들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애꿎은 상념과 혹시나 하는 기대만 늘어갔습니다.

하지만 꿈결같이 짧았던 내 첫사랑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 때의 일기들, 편지들, 한참 후에 모두 태워져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는 내 어린아이 시절의 조그만 한 조각입니다.


#

그래봐야 첫사랑이 양다리 걸친 얘기잖아 응??? 뭥미!!! ㅠ_ㅠ


Posted by 좀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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